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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황제, 삼황(三皇 : 신농, 수인, 복희) 중의 한 사람인 염제(炎帝) 신농(神農)씨가 초목의 식용과 약용을 알아내기 위해 하루에 100가지의 풀잎, 나뭇잎을 씹어보다가 독초를 맛보고 중독이 되자 찻잎을 씹었더니 그 독이 풀어져 그때부터 차를 마셨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은 사실 여부를 알 수 없지만 현대과학으로 살펴보면 약초의 주요 독성분인 알카로이드(Alkaloids)와 차잎 중의 폴리페놀(Polyphenol) 성분이 쉽게 결합해 해독효과를 나타내었고 또 카페인 성분이 강심제로 작용하여 뇌를 자극해서 소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나라 육우(陸羽)가 쓴『다경』「차의 옛일」편에도 신농의『식경』에 이르기를 "차를 오래 마시면 뭇 사람으로 하여금 힘이 있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한다(紳農 食經 茶茗又服 含人有悅志)"고 하였으므로 신농황제 때인 BC 2737년경에는 차가 마셔졌다고 볼 수 있다.

차문화에 대해 문헌상에 가장 정확하게 기록된 것은 BC 59년 전한(前漢)시대 선제(宣帝) 때에 왕포라는 선비가 만든 노예매매계약서이다. 이 계약서에는 편료라는 남자종이 하는 일들이 적혀 있는데 여러가지 일 가운데 한 가지가 무양에 가서 차를 사오고 손님이 오면 차를 대접하는 일(烹茶)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차 마시는 풍습이 전한시대에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또 수서(隋書)에 등장하는 수나라 문제의 이야기가 있다. 수나라 문제가 머리가 아팠을 때 문득 만난 스님이 이르기를 "산 속에 차가 있사오니 달여 잡수시면 마땅히 나을 것입니다"라고 하여 제황이 이를 먹었더니 효험이 있었다. 이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다투어 차를 마시어 천하에서 차 마시기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 고사는 스님으로부터 차 마시기를 권유를 받은 것, 차를 약으로 마셨다는 것, 차 마시기 풍습이 확산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독일의 브레트슈나이데르(Bletschneider)는 이 글을 차 마시기의 기원으로 삼기도 하였다.

그러나 인류가 차를 마시게 된 것은 처음부터 마시는 기호음료로서 이용된 것은 아니고, 어린 찻잎을 먹어보아 해가 없고 특별한 효능이 있으므로 식용이나 약용으로 쓰이다가 천지 신과 조상의 제례에 사용되면서 점차 일상의 생활 중에 마시는 기호음료로 정착되었다. 그러므로 음료 차의 유래는 농경사회의 식생활 문화와 더불어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가야시대부터 차종자가 전해졌다는 주장도 있으나 기록상으로는 신라 흥덕왕(興德王) 3년(828년)에 김대렴(金大廉)이 당나라로부터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에 심은 이후부터 사찰을 중심으로 점차 확대되었다고 한다.